커뮤/러닝

光焰

G9_ 2021. 3. 6. 15:42


그 이야기 들으셨나요?

광염의 소환사 이야기 말이에요. 모르시나요? 다른 마을에도 벌써 소문이 깔렸답니다. 는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어쩌겠어요. 불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그을림이 남기 마련인데. 그런 마법을 가지고 있으면서 무명으로 살려고 든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이 대륙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쉬이 밝힐 수 없으니, 대신 이명을 붙여주었어요. 그리하여 그 이명이 닿은 모든 곳을 그의 장소로 만드는 게 당연한 일이기도 하고요.

모든 마법사들은 동떨어진 존재 아니던가요. 어디에도 닿을 수 있지만, 어디에도 닿지 못하는 자들이요. 어머, 마법사도 아닌 제가 너무 말이 많았나요? 이해해주세요. 황혼의 숲을 수호하던 자의 피를 이어 받은 자로서 그들을 존경하는 걸요. 언제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어요.

그러니 이제는 제가 이야기를 들려줄 시간이 찾아왔네요.
아, 당신이 직접 보셨어야 했는데.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하얗고 하얀 풍경 뿐인 겨울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모습을요.



저희 마을은 예전부터 사람들이 자주 사라졌어요. 누군가는 흔적 없이 사라지고, 누군가는 구두 한 짝을 남긴 채 사라지고, 또 누군가는 다리 한 쪽만을 두고 사라졌어요. 몸은 남아있는데 정신만 사라진 자들도 있었죠. 모두가 요정의 짓임을 알았지만 누구에게도 힘이 없었어요. 인간의 힘에는 한계가 있잖아요. …마법사에게도 한계가 있다고요? 그야 당연하겠죠. 없다고는 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그 한계가 인간보다는 높잖아요.

인간은 자신들을 너무나 사랑해서, 자신과 동떨어진 존재보다는 자신과 닮은 존재를 더 아낍니다. 먼 옛날옛적에 인간과 마법사들은 형제와도 다름없었다고 하지 않나요. 아마 과거에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그런 점에서 저희들은 요정을 증오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를 계속해서 데려가는, 인간과 다른 존재를요. 물론 그들에게는 악의가 없었어요. 그저 저희와 놀고 싶어했죠. 하지만 요정들의 ‘장난’은 인간에게 너무 위험한 것이에요. 저희 마을이 로스란도의 작은 하메룬이라고 불리긴 하나, 세계는 이전과 같지 않으며 이곳은 태양이 숲에 가려지는 곳입니다. 저희는 요정들로부터 저희 자신을 수호해야 하는 자들입니다.

요정으로부터 받은 축복이 있긴 해요. 제가 그 사람 중 한 명이죠.
그러나 모든 사람이 축복을 받은 것은 아닌 걸요. 보이지 않는 존재를 그 어떤 인간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 역시 인간의 육신을 뒤집어써도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요. 그 눈이 저희와 다르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요. 도 그랬는 걸요.

낮은 목소리가 문을 두드렸던 날이 아직도 선연하네요. 망토를 뒤집어 쓴 꼴이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기억하지 않도록 하려는 사람 같았어요. 실패했네요. 제가 기억하는 걸요.

눈이 몰아치는 날이었는데, 그의 주변에 겨울은 없었죠. 다른 계절이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가장 닮은 것은 가을이겠지만… … 어떤 가을도 그토록 뜨겁진 않아요. 말하자면, 그래요, 하얀 밤이었네요. 그는 작은 빛을 데리고 찾아왔습니다.


사실 별 말은 하지 않았어요. 이곳에 이틀 정도 머무를 예정이니 그 시간 동안에 있을 곳을 내어 달라는 말 뿐이었죠. 그가 찾아온 이유는 저희에게 있지 않았으니까요.
그는 요정을 찾아갔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어요.



……당신은 겨울이 사라지는 마법을 알고 계시나요?



밝고도 붉은 힘이 추위를 몰아내고, 사라진 사람들이 일부라도 돌아오는 밤을 말이에요.

한 발자국, 작은 빛이 허공을 돌고.
두 발자국, 손등에서 붉은 빛이 터짐과 함께 불꽃이 별과 춤을 추고.
세 발자국, 그리하여 광휘가 그를 감싸고 흩어지는 광경.
단 세 발자국 만에 눈이 사라지고 허공 속으로 녹아내렸어요.

그런 마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세상에 없는 자처럼 살아가겠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그런 점에서는 조금 바보같은 마법사였어요. 도무지 남의 말을 들을 만한 성미가 아닌 지라 그냥 대놓고 말했죠. 망토를 눌러써서 그 때 표정을 제대로 못 본 점이 아쉬웠지만, 얼빠진 반응은 재밌었네요. 하하. 그러고는 하는 말이 뭔 줄 아시나요? “어차피 가지지도 못 할 건데, 마법이 좋긴 뭐가 좋아?” …… 웃긴 말이죠? 그래서 후줄근한 망토를 빼앗고 멋진 망토를 선물해줬어요. 허락이요? 괘씸해서 안 받았어요. 하지만 그 마법사가 망토를 받았으니 된 걸로 쳐요. 꽤 점잖은 얼굴이더라고요. 이 마을에서는 다행히 저만 봤죠. 보라색 눈이 예뻐서, 외안경도 없애버리려다 말았어요.

아차, 자신에 대해 너무 떠들지 말라고 했는데. 그런데… 어째 알겠다는 눈치네요? 뭐 좋아요. 캐묻진 않을 거니까요. 당신이 아는 마법사가 맞는지 확인해주고 싶진 않거든요.

얼굴도, 성격도 모르고. 알려진 것은 오로지 이명 뿐인 마법사가 자신을 증명하는 방법이 마법이라는 건, 꽤 낭만적이잖아요. 아름다운 것에는 설득력이 있고요. 그러니 스러진다 한들 환상을 품게 되는 거예요. 나중에 그를 만나면 전해주세요. 듣고 코웃음 칠 것 같긴 하지만요.



… 벌써 헤어질 시간이던가요?
그럼 마법사 님, 떠나기 전에 호수에도 들렀다 가세요. 로스란도는 바다 뿐만 아니라 호수도 절경이거든요.